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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장 19-20절 말씀/개역개정)


<내용관찰>


<느낀점>


주님을 향한 '열심'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가장 가난했을 때.

내 인생에서 가장 밑바닥을 찍었을 때.


이 말씀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하는 주님의 말씀이다. (계 3:14)

아마도 라오디게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다. (계 3:17)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이 많았던 것 같다. (계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내가 지금은 가난에서 벗어났기에, 먹고 싶은 것은 먹을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있다.

옛날에는 한 끼 식사를 바라보면서 뜨겁게 기도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뜨거움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모든 일에 미지근해지고, 주님을 간절히 바라는 그 마음이 작아지는 것 같다.


요한계시록은 '소망'의 책이다.

한국전쟁 때도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을 읽었고, 거기서 소망을 발견했다.

내 인생의 최후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소망이 담겨있는 책이다.


내가 최후 승리를 얻기를 원하시는 주님.

나에게 최후 승리를 주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하나님의 사랑.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주시는 책망과 격려.

미지근해지는 나를 위해서...

물질적으로 부족했을 때 찾았던 주님을 이제는 물질적으로만 찾지 말고 모든 일에 주님을 찾고, 모든 것을 주님께 구하는 지혜 있는 내가 되기를...


열심!

내가 세상적으로 열심을 내는 것만큼만이라도 주님께 열심을 내야 될 텐데...

주님이 전부였던 때를 한참 지나오니깐 점점 주님께 소홀하고, 주님에 대한 열심이 식어지는 것 같다.


항상 성령님과 손잡고 새벽 기도회를 나오고, 성령님과 함께 일하고, 성령님과 함께 하루하루를 보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수학 일을 한다고 문제를 제작하고, 그래프를 그리는데, 성령님보다는 '수학'에 빠져있는 모양이다.

주님의 말씀보다는 수학 책, 물리학 책에 빠져있고, 예배를 통해서 얻는 즐거움보다 컴퓨터 앞에서 수학 일을 하는 것이 즐겁다.

굳이 성령님과 같이 일하지 않는 것 같다.


다시 '예배'부터 열심을 내야겠다.

담임목사님께도 혼난 부분이다.

6일 동안 미친 듯이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식하는 하루가 정말 중요하다.


수학을 하면서 즐거운 것이 내 인생의 본질이 아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다 초막 셋을 짓고..."

"수학이 좋사오니... 물리학이 좋사오니..."


내 인생의 본질은 천국 가는 것이다.

예배의 열심이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있어야 된다.

내 인생의 본질, 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알고, 우선순위가 높을수록 더욱 열심을 내는 내가 되기를...

그동안 우선순위를 망각했던 것을 회개한다.


아브라함의 우선순위가 안락한 고향이었다면...

모세가 왕자의 자리를 우선순위로 생각했다면...

예수님께서 40일 금식을 끝내고 주리심을 못 이겨서 '떡덩이'를 우선순위로 생각하셨다면... (마 4:2-4)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권위와 영광을 우선순위로 생각하셨다면... (눅 4:5-8)


'인생 수학'을 하되, 그것보다 더 우선순위는 '예배'인 것을...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드리는 것임을...

나의 본질은 '수학'이 아닌 '예배'임을...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Posted by 아쌤수학
댓글 0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