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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출가를 당했다.


주머니에 돈 한 푼도 없이, 아무것도 없이 빈털터리로 집에서 쫓겨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부모님의 보살핌이 필요하고, 경제적인 지원이 있었어야 됐는데, 그런 것 전혀 없이 집에서 쫓겨났다.

생고생이 시작됐다.


가장 생고생을 했던 것은 '정보 부족'이었다.

잘 곳에 대한 정보가 없었고, 아르바이트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구인광고를 보면서 공사판에서 노가다를 시작으로 이것저것 이상한 일들을 했다.

홍제동에 자리를 잡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몸에 좋지 않은 식품들을 먹으면서 건강이 나빠지는 것을 느꼈고, 그렇게 하루하루 무의미한 생활을 했다.

일하던 식당에서 2개월치 월급을 뜯겨서 1주일 정도 홍제천 근처에서 노숙을 했다.

돈 조금만 있어도 근처 찜질방에서 잠을 자면 됐는데, 그 돈마저도 없어서 노숙을 한 것이다.

하루에 한 끼만 먹었는데, 그마저도 1000원, 2000원으로 부실하게 해결했다.

노숙을 하면서 어릴 때 들었던 벧엘에서의 야곱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언젠가 나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졌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교패만 찾아다녔다.

역시 세계 최대의 교회답게 여의도순복음교회 교패를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여의도순복음교회 교패가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식사 한 끼를 구걸했다.

어떤 성도님의 가정은 주일에 조용기 목사님이 하셨던 설교의 내용을 물어보는 집이 있었다.

늘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나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 성도님께서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고, 노숙을 하는 중인 것을 아신 후에는 찜질방이라도 가라고 10만 원을 주셨다.

그 10만 원을 꼭 필요한 곳에 정말 요긴하게 썼다.

그렇게 2개월 정도를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일을 했다.


일을 해서 고시원을 들어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운도 지지리도 없게 그 고시원이 내가 입주한지 1주일 만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문을 닫고 인테리어를 다 뜯어내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황당해서 여기저기 알아보니, 3일 전부터 공지를 했는데, 핸드폰이 없던 나는 연락을 받지 못했고, 그렇게 선입금한 돈 전체를 환불하지 못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제 고시원이라는 열악한 실내공간이라도 마련하며 주님께 감사했던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그래도 늘 절대감사, 절대긍정을 말버릇처럼 중얼거리면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찬송가를 부르며 다시 노숙을 시작했다.

이전보다는 노숙에 더 능숙한 상태에서 다시 노숙을 시작하니깐 시행착오가 적었기에 감사했다.

고시원보다 더 좋은 환경을 주실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했다.


홍제천에서 다시 노숙을 하고 있을 때, 아침에 운동하시던 어떤 분이 나를 불쌍하게 보셨나 보다.

1주일 동안 씻지도 않아서 내가 내 몸 냄새에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는데, 그런 나에게 오셔서 김밥을 싸주셨다.

다음 날은 김밥에 부침개...

그러다가 아예 나를 집에 초대해서 식사를 차려주셨다.

정말 눈물나게 고마운 분이다.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하며 지낸다.


그분의 집에 들어가 보니 붓글씨로 쓰여있는 낯익은 성경 구절이 보였다.

요한삼서 1장 3절 말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눈물이 쏟아졌다.

어릴 때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많이 듣던 성경 구절인데...

여의도순복음교회 권사님이셨다.

그리고 나에게 오산리기도원을 소개해주셨다.

거기에서 숙박하고 봉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같이 차를 타고 오산리기도원을 갔다.

식권도 3주일 만큼을 한 번에 뽑아주셨고, 3주일 동안 숙소로 쓸 곳까지 다 결제해주셨다.

3주일 동안 구인구직 사이트 등을 통해서 구직활동을 하고, 기도원에서 기도 실컷 하고 내려온 후로는 빌어먹지 않을 복을 받고 플러스 인생을 살라는 조언을 들었다.



Posted by 아쌤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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