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새벽에 갑자기 인도네시아 나그네를 대접했다.
▶ 수업자료 제작 일이 밀려서 작업실에서 새벽 늦게까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오전 3시에 퇴근할 준비를 하면서 “가자마자 씻고 자야 오늘 성찬 주일을 맑은 정신으로 드릴 수 있겠구나.” 혼잣말을 하고 작업실 문을 열었는데, 안 씻어서 시꺼멓고 지린내와 구린내가 냄새가 풀풀 나는 아가씨가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한테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어설픈 영어를 하기에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는데, 하필이면 인도네시아 사람이라고 한다. 하... 이것은 운명이다. 내가 인도네시아어를 잘하니깐 울먹이면서 배가 고픈데 스마트폰과 지갑이 있는 가방을 택시에 두고 내려서 돈이 없다고 했다. 나중에 자기 나라 가면 꼭 갚겠다고 한다. 안 갚아도 된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그 아가씨의 스마트폰은 꺼져있었다. 먼저 편의점에 가서 여행용 세면도구 세트를 샀다. 일단 작업실에 온수가 나오지 않아서 펄펄 끓인 물과 찬물을 섞어서 샤워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배고프다니깐 가방에 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보람 초콜릿’을 먹였다. 좋은 재료를 넣은 수재 초콜릿이라서 비싸다. 작업실에서 오랜만에 쿠쿠 전기밥솥을 썼다. 하필 냉장고에 어제 페트병에 담아 놓은 쌀이 있었다. 인도네시아 사람이라서 혹시라도 돼지고기를 안 먹나 싶어서 돼지고기를 먹냐고 물어봤는데, 자기는 무슬림이 아니라서 괜찮다고 한다. 카레를 해줬다. 냉장고에 있는 양파 2개, 감자 3개, 당근 1개를 다 때려박았다. 잡곡밥은 인도네시아에서 안 먹는 음식일 수도 있어서 그냥 흰쌀밥을 해줬다. 김치도 주려고 했는데, 매운 것을 못 먹는다고 해서 안 줬다. 며칠 전에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한국산 딸기가 인도네시아에서 인기가 많다면서 나보고 딸기를 실컷 먹을 수 있는 것이 부럽다고 했었던 것이 기억났다. 인도네시아처럼 과일이 풍부한 나라에서 왜 우리나라 과일 따위를 비싸게 사서 먹는지... 아무튼 내일 먹으려고 냉장고에 놔둔 딸기도 같이 대접했다. 누추한 작업실에서 음식을 만드느냐고 이렇게밖에 못 차려줬다고 하니깐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계속 울고, 괜히 나도 울었다. 대화를 몇 마디 나눠보니 인도네시아에서 교회를 다닌다고 한다. 그것도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베다니교회! 자카르타에 있는 정말 큰 교회다. 아마도 내가 다니는 여의도순복음교회보다는 작지만, 그 정도 되는 큰 교회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려면 여의도순복음교회 주일 2부 예배를 드리라고 했다. 주일 4부 예배는 인도네시아에서 잘 안 부르는 찬양이 많을 것이기에... 인도네시아에서도 많이 부르는 찬양을 부르려면 주일 2부 예배에 가는 것이 좋을 거라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내 일행들이랑 주일 3부 예배를 같이 드리자고 하고 싶었지만...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주일 2부 예배와 주일 4부 예배가 인도네시아 통역이 지원되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한국에 오면 꼭 주일 2부 예배를 드렸다. 아무튼 그 인도네시아 아가씨는 내 작업실에서 편하게 쉬라고 하고, 나는 방금 집에 왔다. 조금 있다가 해가 뜨면 지인 중에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분이 계셔서 도움을 청할 생각이다. 잠깐 눈을 붙이고 맑은 정신으로 성찬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잠이 안 온다. 성경에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고 나온다. 그 작은 나그네 한 명이 나에게 보내주신 예수님이다. 그래서 감사했다. 예수님이 누추한 내 작업실에 심방을 와주신 것 같아서... 예수님께서 오실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더 좋은 식재료를 가져다 놓았을 텐데... 그래도 있는 재료를 가지고 최선을 다한 것 같아서 뿌듯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다니는 권사님들은 하나같이 음식 대접을 잘해주시는 것 같다. 예전에 일 때문에 다녔던 여의도순복음용인교회 사모님, 권사님들도 그랬고, 우리 교구에서 김치를 가장 맛있게 잘 담구시는 강선옥 권사님도 그렇다. 이분들을 보면서 나도 나중에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하루만큼은 비록 재료가 부족했으나 이 훌륭한 분들만큼 한 것 같아서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