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 채플/말씀 나눔

운영하는 유튜브의 비난 댓글을 보며 다시 생각해 봤다. (2025.07.05)

아쌤수학 Isaac Yu 2025. 7. 5.

운영하는 유튜브의 비난 댓글을 보며 다시 생각해 봤다.

2025년 7월 5일에 블로그에 올린 공개 게시물이고, 초안은 하루 전인 2025년 7월 4일에 작성했습니다.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Isaac Yu 제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들어가는 글.

인도네시아 친구들과 함께 구독자 수가 10만이 넘는 인도네시아 찬송가 리메이크 유튜브를 운영한다. CCM이 아닌 찬송가만 올리고, 차분하지만 뜨거운 찬양을 추구하며 찬송가를 편곡하고, 송폼을 정한다. 이 방향성에 공감하시는 분들의 후원을 많이 받았다. 그 후원금으로 700만 원짜리 캠코더 네 대를 사고, 좋은 악기를 샀다. 매년 영상 퀄리티가 좋아지더니, 이제는 더 좋아질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좋다. 그래서 좋은 댓글이 많이 달린다. 반대로, 안 좋은 댓글도 종종 본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하지 않냐는 잔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금 억울했다. 나를 되돌아봤다. 나는 베풀기를 좋아한다. 더 정확히는, 비전이 있는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한다. 어떻게 보면 투자에 가깝다. 3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회개했다. 3년 전에 내가 소속된 기도 모임에서 어렵게 선교활동을 하고 계시는 어떤 선교사님을 작게 후원하고 있었다. 나에게도 그 선교사님을 같이 후원하자는 요청이 왔다. 이미 선교비를 보내는 인도네시아 교회들이 있었다. 그래서 거절했다. 더 정확히는, 내가 선교비를 보내는 인도네시아 교회들은 해마다 양적으로 매우 부흥하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어렵게 선교활동을 하고 계시는 선교사님을 후원하는 것은 밑이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것 같아서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거절한 것이다. 그리고 몇 개월 전에 다시 그 기도 모임에서 그 선교사님을 같이 후원하자는 요청이 오랜만에 왔다. 다시 거절했다. 그때 내가 학비 후원을 얻기 위해서 조용기 목사님을 찾아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가난하고, 지저분하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녔고, 못 씻어서 냄새가 나던 나에게 어떤 안수집사님을 소개해주셨고, 그 안수집사님을 통해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하셨던 목사님의 은혜가 떠올랐다. 어려운 곳보다 비전이 있는 곳에 선교비를 보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선교사님도 귀한 사역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고, 몇 개월 전부터 기도 모임 사람들과 함께 선교비를 보내게 됐다.

잠언 11장 24-25절 말씀.

24 남에게 나누어 주는데도 더욱 부유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땅히 쓸 것까지 아끼는데도 가난해지는 사람이 있다. 25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부유해 지고, 남에게 마실 물을 주면, 자신도 갈증을 면한다.
성경책을 넘기다가 메모를 발견했다. 조용기 목사님께서 생전에 하시던 설교 중에 감동이 돼서 받아 적은 것으로 기억한다. "세상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주님께 드린 것만 남는다." 베풀면 남는다. 베푼다는 것은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주님께 드리면 남는다.

신명기 22장 1-4절 말씀.

1 너희는 길 잃은 이웃의 소나 양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반드시 끌어다가 그 이웃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2 또 너희는 그 이웃이 가까이에 있지 않거나,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해도, 그 짐승을 너희의 집에 끌어다 두었다가, 그 주인이 찾을 때에 돌려주어야 한다. 3 나귀도 그렇게 하고 옷도 그렇게 하여라. 그 밖에도 이웃이 잃은 것이 무엇이든지, 너희가 발견하거든 그렇게 하고, 못 본 체하지 말아라. 4 이웃의 나귀나 소가 길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아라. 너희는 반드시 그 이웃을 도와 그것을 일으켜 주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레위기와 신명기를 많이 읽는다. 레위기와 신명기를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 수 있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못 본 체하지 말아야 한다.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일으켜 주어야 한다.

요한일서 3장 17절 말씀.

17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나 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머물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머물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형제와 자매를 사랑해야 한다. 내가 먼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이기에, 나도 내 주변에 죽어가는 사람을 생명으로 옮겨야 할 책임이 있다.

마태복음서 25장 37-40절 말씀.

37 그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38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39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할 것이다. 40 그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지극히 보잘것없게 보이는 사람에게 베푼 것이 주님께 베푼 것이다.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가장 큰 분께 한 것이 되는 셈이다. 머잖아 굉장히 높은 분을 뵙는다. 그분을 뵐 생각만 해도 긴장되고 떨린다. 그분의 레벨을 생각하면 어떤 식사를 베풀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저렴한 식사를 대접할 생각이 1도 없다. 그분의 마음이 풀어지면 내가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릴지 알기 때문에, 한 끼에 10만 원이 넘는 식사를 대접해도 돈이 아깝지 않다. 그분보다도 더 높은 주님께 내가 식사를 대접할 수 있다. 주님께 마실 것을 드릴 수도 있고, 입을 것을 드릴 수도 있다.

나가는 글.

조용기 목사님께서 설교시간에 "세상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주님께 드린 것만 남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헛된 것을 쫓아서 살아봤자 다 없어질 뿐이다. 남는 것은 주님께 드린 것뿐이다. 이것을 기억하며 오늘도 주님께 드리며 살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