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 채플/말씀 나눔

희년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2013.05.30)

아쌤수학 Isaac Yu 2013. 5. 30.

제목 : 희년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사역을 시작할 때 선포하신 말씀에 나오는 은혜의 해희년을 뜻한다는 것에 꽂혔던 적이 있었다. 희년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다.

레위기 258-17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가면 49년이 지나간다. 그다음 해 일곱째 달 10일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뿔 나팔을 크게 불어 온 누리에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여라. 50년째 되는 해는 희년이니 너희는 그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들 각자가 자신이 물려받은 가문의 영토를 되찾고, 또 종살이를 했던 자들도 모두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 50년째 되는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이 한 해 동안에는 밭에 씨를 뿌리지 말고, 저절로 자라난 곡식이나 포도송이도 거두어들이지 말아라. 이 해는 희년이니 너희는 한 해를 거룩하게 지내야 한다. 희년 동안에 너희는 밭에서 저절로 난 것들만 먹을 수 있다. 희년은 모두가 각자 자기 자신의 본래 땅을 되찾는 해이다. 너희는 동족에게 땅을 사거나 팔 때 서로 부당한 이익을 취해서는 안 된다. 동족에게 땅을 살 때는 다음 희년까지 몇 해가 남았는지 계산하여 거기에 근거하여 사들여야 한다. 땅을 파는 사람도 희년이 돌아올 때까지 거두어들일 수 있는 소출의 양을 근거로 값을 매겨야 한다. 남아 있는 햇수가 많으면 값을 더 많이 치르고, 남아 있는 햇수가 적으면 값을 적게 치러야 한다.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 말아라. 너희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너희의 주 하나님이다.

희년을 통해 50년마다 모든 땅이 원래 소유주에게 돌아가고, 모든 노예가 풀려나고, 모든 빚이 탕감된다. 희년을 통해 내 빚이 탕감됐다고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은데, 진짜 빚이 탕감된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아마도 희년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했을 것이다. 레위기를 읽다 보면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구나!”라고 감탄할 때가 있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신이 어디 있을까? 희년과 같은 율법이 잘 지켜졌다면 많은 사람이 행복했을 것 같다.

 

희년을 지키지 않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누가복음서 1818-25

어떤 유대인 관리가 예수께 여쭈었다. “선하신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지금 당신이 나를 선하다고 하였소? 하나님 한 분밖에는 선하신 이가 없소. 당신은 계명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곧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지 않았소?” 그 관리가 대답했다. “잘 압니다. 저는 이 모든 계명을 어릴 때부터 지켜 왔습니다.” 그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당신에게는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소. 당신이 가진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오. 그리하면 당신은 하늘나라의 보화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오. 그렇게 행한 후에 와서 나를 따르시오.” 이 말씀을 듣자 그 관리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몹시 근심하였다. 사실 그는 아주 많은 재산을 지닌 큰 부자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란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보다는 차라리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한층 쉬울 것이다.”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물어본 부자 유대인 관리는 아마도 희년을 빼고 다른 율법을 다 지켰을 것이다. 지금은 땅 부자가 아니라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자가 될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활동하던 때는 땅 부자가 아니면 부자가 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희년을 지켰다면 아주 많은 재산을 지닌 큰 부자라고 불릴 정도로 재산을 늘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 유대인 관리만 희년을 안 지켰을까? 아마도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희년을 지키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을 종종 한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가진 것을 버리는 희년을 지켜야 한다. 희년을 실천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모순적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율법을 없애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

마태복음서 517-20

“내가 모세의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예언을 없애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완성하러 왔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천지가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무리 하찮은 계명일지라도 그것을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도록 가르치고 또 그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여러분이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 교사들보다 더 의롭지 못하다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없애러 오시지 않았다. 완성하러 오셨다. 바리새파 사람들보다 더 율법에 순종해야 한다. 희년을 만드신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의 죄가 없어진 것과 같이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은 자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희년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이사야서 611-2

보라. 주의 영이 내게 임하였으니 그것은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주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상심한 이들의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 된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또 주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지금은 주께서 자기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해요, 우리 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원수에게 보복하시는 해임을 선포하고, 아울러 슬퍼하는 모든 시온의 백성들을 위로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예언이 이사야서에 나온다.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영적으로 가난하고, 죄에 갇혀 있고, 자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똑같은 분이시지만 자신을 온전히 비운 후에 종의 모습을 취하고 내려오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희년을 베풀어주셨다.

 

예수님은 희년을 선포하셨다.

누가복음서 416-21

예수께서 자신이 자라난 고향 나사렛 마을로 가셨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께서는 늘 하던 대로 회당에 가셨고, 거기서 성경을 읽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 받아든 예수께서는 두루마리를 펼치고 읽어 내려 가셨다. “주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으니 그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나를 보내셔서 포로로 붙잡힌 이들에게는 자유를 선포하게 하셨고, 앞을 못 보는 이들에게는 눈을 뜨게 해서 다시 보게 하셨다. 또 억눌린 사람들은 다 풀어 주게 하셨고, 주께서 은혜 베푸실 때를 사람들에게 널리 선포하게 하셨다.” 이 말씀을 읽으신 후 예수께서는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사람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셨다. 회당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예수께로 쏠렸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신 후 나사렛 마을로 오셔서 희년을 선포하셨다. 해방을 선포하셨다. 죄에서 해방되었다. 사망에서 해방되었다. 레위기에 나오는 희년은 효력이 1년 동안 유지되지만,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희년에는 언제나 효력이 발생한다.

 

희년을 지키며 살기를 원한다. 내가 만나는 학생님들에게 사랑을 베풀기를 원한다. 지인분과 수학교육에 대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불안을 조성해야 해. 학부모들을 달달 볶아서 특강을 막 하는 거지. 방학 때 돈을 쓸어 담아야 해. 수학 강사로 돈을 벌려면 그렇게 해야 해.” 특강을 많이 해야 한다. 돈을 벌 목적으로 특강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무료 특강 또는 거의 무료나 다름없는 특강비를 받고 특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이 마음이 10, 20년 후에도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