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 채플/말씀 나눔

선택의 기로 앞에서... (2013.06.01)

아쌤수학 Isaac Yu 2013. 6. 1.

제목 : 선택의 기로 앞에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큰 방향은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재작년에 두 갈림길 중 하나를 선택해서 열심히 걷는 중에 다시 두 갈림길이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명쾌하게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정답을 알면 걱정을 안 할 것 같은데... 정답을 모르는 상태이다 보니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다. 신중한 것이 좋은 것도 있지만... 혹시라도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해야 할 일을 하나도 하지 못하고 하루를 보내는 나를 보면 스스로 답답할 때가 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옳게 분별해야 한다.

로마서 121-2

형제들이여.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모쪼록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며 받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릴 합당한 영적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의 풍조를 더 이상 본받지 말고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되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하고 온전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 옳게 분별하여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어디에 있는지 옳게 분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뜻이 완성되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세상의 기준도 중요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어느 길에 있는지 분별해서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다 이해할 수 없다.

욥기 381-426

그때에 주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셨다. “알지도 못하면서, 무지하고 허튼 말로 나의 뜻을 흐려놓는 자가 누구냐? 이제 너는 대장부답게 허리띠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보아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알고 있다면 어디 대답해 보아라. 누가 이 땅의 크기를 정하였느냐? 네가 아느냐? 누가 땅 위에 다림줄을 놓았는지 너는 알고 있느냐? 땅의 기초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을 단단히 붙들고 있는 이가 누구냐? 누가 땅의 주춧돌을 놓았는지 네가 아느냐? 땅의 주춧돌이 놓일 때 하늘의 새벽별들이 다 함께 노래를 불렀고, 모든 천사는 기쁨으로 소리를 질렀느니라. 바닷물이 땅 속의 모태에서 거침없이 터져 나올 때 누가 그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어 놓았느냐? 그때에 구름을 옷 삼아 바다를 싸매고, 어둠으로 바다를 감싼 이가 내가 아니더냐? 그렇다. 바로 내가 금을 그어 바다의 경계를 그만큼 정하였고, 문빗장을 질러 바다를 그곳에 가두어 두었다. 그러고서 내가 바다에게 명하기를 “바다야. 너는 여기까지만 나올 수 있고, 더 이상 이 경계를 넘어서지 말라. 제 아무리 도도하게 넘실거리는 파도라 해도 너는 여기서 멈추어라!” 하였느니라. 네가 언제 아침더러 “밝아 오라!” 하고 명령해 본 적이 있느냐? 새벽에 동녘이 밝아오게 해본 적이 있느냐? 네가 새벽에게 명하여 그 빛을 땅 끝까지 널리 비추게 함으로써 땅을 덮고 있던 어둠의 옷깃을 걷어내어 어둠 가운데서 악을 행하던 악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악을 멈추게 한 적이 있느냐? 새벽빛이 비추면 언덕과 계곡은 그 자태를 드러내지 않더냐? 진흙 위에 도장을 찍어 놓은 것처럼 선명하게 보이지 않더냐? 옷자락이 그 주름까지 보이듯 그렇게 잘 드러나지 않더냐? 대낮의 빛은 악한 자들에게 너무나 밝아서 그들의 폭행을 훤히 드러내며 또 저지하느니라. 너는 물이 솟아나는 바다 속 밑바닥까지 들어가 본 적이 있느냐? 그 밑바닥 깊은 곳을 네 두 발로 거닐어 본 적이 있느냐? 너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가서 그 안쪽을 들여다본 적이 있느냐? 죽음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 그 문을 본 적이 있느냐? 너는 땅이 얼마나 드넓은지 상상이라도 해보았느냐? 그래. 이 모든 것들을 알고 있다면 어디 한번 내게 대답해 보아라.” “너는 빛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아느냐? 어둠이 어디에 거주하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너는 빛과 어둠을 인도하여 그들을 제자리에 데려다 줄 수 있느냐? 그것들이 살고 있는 곳에 이르는 길을 네가 아느냐? 아무렴. 너는 창조 이전부터 이미 태어난 몸이므로 이 모든 것들에 관해 잘도 알고 있을 것이다. 네가 세상이 창조되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토록 오래 살아왔으므로 설마 이런 것들을 모를 리가 있겠느냐? 너는 눈을 쌓아 둔 창고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느냐? 우박을 쌓아 둔 곳간에 본 적이 있느냐? 내가 그것들을 환난의 날에 사용하려고, 또 전쟁과 전투의 날에 쓰려고 거기에 미리 비축해 두었느니라. 태양이 떠오르는 그곳에 네가 가본 적이 있느냐? 동풍이 어디서부터 불어오며, 또 그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흩어지는지 네가 아느냐? 땅 위에 쏟아진 폭우가 흘러내려 가도록 골짜기 길을 터놓은 이가 누구냐? 천둥 번개가 땅까지 이르도록 그 길을 만들어 놓은 이가 누구냐? 아무도 살지 않는 곳,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일지라도 그곳에도 비를 쏟아지게 하는 이가 누구냐? 도대체 누가 메마른 땅을 촉촉이 적시며, 거친 땅에 비를 내려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게 하느냐? 비한테 아버지가 있기라도 한단 말이냐? 누가 이슬방울을 낳았단 말이냐? 얼음은 어느 모태에서 생겨났느냐? 하늘에서 내리는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물을 돌같이 딱딱하게 얼리는 이가 누구냐? 바다 수면까지도 얼게 하는 이가 누구냐? 네가 북두칠성의 별자리를 한데 묶을 수 있느냐? 오리온자리 별들을 묶어놓은 띠를 풀 수 있느냐? 네가 계절에 따라 별자리를 배치할 수 있느냐? 큰곰자리 별들과 작은곰자리 별들을 이끌어 낼 수 있느냐? 너는 하늘을 움직이는 법칙을 아느냐? 또 그 법칙이 땅에 적용될 수 있도록 올바로 세울 수 있겠느냐? 너는 네 목소리를 높여서 구름에게까지 명령할 수 있겠느냐? 또 구름에게 명령하여 네 위로 비를 흠뻑 내릴 수 있게 하겠느냐? 네가 번개를 보내 네가 가리키는 곳을 치게 할 수 있느냐? 그 번개가 네 앞으로 와서 “예. 우리가 여기 있으니 명령만 내리십시오!” 하고 대기하도록 할 수 있느냐? 사람의 마음속에 지혜를 준 이가 누구냐? 사람의 머릿속에 총명을 준 이가 누구냐? 저 하늘의 구름을 다 헤아릴 만큼 지혜로운 이가 누구냐? 하늘에서 물 항아리를 기울여 땅 위에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이가 누구냐? 누가 티끌을 딱딱한 흙덩이가 되게 하고, 또 누가 그 흙덩이를 서로 달라붙게 할 수 있느냐? 네가 사자에게 먹을거리를 계속 대줄 수 있느냐? 굶주린 새끼 사자들의 배를 채워줄 수 있느냐? 사자들이 굴속에 웅크리고 모여 있거나 수풀 속에서 가만히 숨어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을 때 네가 그렇게 해줄 수 있겠느냐? 어린 까마귀들이 배가 고파 이리저리 헤매면서 나를 향해 “까악까악” 하고 우짖을 때 그 까마귀 떼에게 먹이를 마련해 주는 이가 누구냐?” “너는 산염소가 언제 새끼를 치는지 아느냐? 들사슴이 새끼 낳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그것들이 몇 달 동안 새끼를 제 뱃속에 품고 다니고, 또 어느 때에 새끼를 낳는지 네가 알고 있느냐? 그것들이 몸을 구푸려 일단 새끼를 낳으면 해산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고, 어린 새끼들은 들판에서 무럭무럭 자라 튼튼해지게 되면 어미 곁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느니라.” “누가 들나귀를 자유롭게 광야에 풀어주었느냐? 누가 매인 줄을 풀어 날쌘 그것들을 광야에서 마음껏 뛰놀게 하였느냐? 바로 나다! 내가 광야를 들나귀의 집으로 정해 주었고, 소금기 있는 그 땅에서 살게 하였느니라. 들나귀는 시끌벅적한 동네를 싫어하고, 자기를 길들이려는 사람의 말을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느니라. 들나귀에게는 산이 목장과 같아서 이 산 저 산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푸른 풀을 찾느니라. 네가 들소를 부려먹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들소가 너의 외양간에서 얌전히 밤을 보낼 것 같으냐? 네가 들소에게 쟁기를 매어 밭을 갈게 할 수 있겠느냐? 들소가 고분고분 네 말을 따라서 이랑을 갈 수 있을 것 같으냐? 들소가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서 네가 그 힘을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네가 들소의 등 위에 무거운 짐을 지울 수 있을 것 같으냐? 추수 때 거두어들이는 곡식단을 들소에게 실어 보내 그것을 타작마당에 내려놓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타조는 재빠르고 웅장하게 날개를 칠 수 있지만, 그 깃과 털은 황새만 못하여 제 새끼를 따뜻하게 품지 못하느니라. 그래서 타조는 자기 알을 땅바닥에 낳고, 모래 속에서 따뜻하게 되도록 내버려 두는데 그 알이 누군가의 발에 밟혀 깨질 수 있다거나 혹은 들짐승이 그 알을 깨뜨릴 수도 있다는 데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이처럼 타조는 자기가 낳은 알을 마치 자기 것이 아닌 양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거칠게 다룬다. 애써 알을 낳은 것이 헛수고가 될지 모르는데,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것은 전부 나 하나님이 타조에게 지혜를 허락하지 않았고, 지각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타조가 그 몸을 높이 쳐들고 날개를 치면서 달릴 때는 말이나 그 말 탄 자를 우습게 여기느니라.” “또 네가 말에게 강한 힘을 주었느냐? 네가 말에게 휘날리는 갈기를 그 목에 달아 주었느냐? 네가 말을 메뚜기처럼 잘 뛸 수 있게 했느냐? 사람을 두렵게 하는 말의 그 위엄 있고 위세 당당한 콧소리를 내게 한 것이 너란 말이냐? 말은 앞발로 땅을 힘차게 차고는 전쟁터로 당당하게 내달린다. 말은 두려움이란 걸 모른다. 칼을 들이대도 피하는 법이 없느니라. 말을 탄 용사의 화살통이 덜커덕 흔들리고 긴 창과 짧은 창이 햇빛에 번쩍거려도 전쟁의 나팔소리를 들으면 그 즉시로 미칠 듯이 발로 땅을 박차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격렬하게 앞으로 내달린다. 그리고 나팔 소리가 울릴 때마다 말은 “히히힝.” 하고 콧김을 내뿜으며 멀리서부터 싸움의 냄새를 맡고 지휘관들의 우레 같은 호령과 명령 소리를 다 알아듣느니라.” “매가 높이 떠올라 그 날개를 펼치고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네게서 배운 지혜 때문이더냐? 독수리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 높은 곳에 둥지를 트는 것이 너의 명령을 따른 것이더냐? 독수리는 가파른 절벽에 자기 보금자리를 꾸며 살고, 험한 바위산을 자기 요새로 삼는다. 독수리는 또 거기에서 먹이를 찾되 그 눈은 아주 멀리서도 먹이를 탐지하고 알아차리느니라. 독수리 새끼들도 피를 빨아먹고 사니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있느니라.” 주께서 욥에게 또 말씀하셨다. “네가 아직도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아직도 전능자가 잘못되었다고 탓할 셈이냐? 하나님을 탓하는 너 욥아, 어디 나에게 대답해 보아라.” 그때에 욥이 주께 대답했다. “저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저같이 하찮은 자가 감히 무슨 말로 주께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입니다. 저는 이미 너무나 많은 말을 했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자 주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이제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대장부답게 일어서라. 내가 네게 물을 터이니 너는 내게 대답해 보아라. 네가 내 판결을 무시하고 비난하려느냐? 네 자신이 옳게 보이려고 내게 잘못을 덮어씌우려는 것이냐? 너의 팔이 하나님의 팔처럼 힘이 세단 말이냐? 너의 목소리가 하나님의 목소리처럼 천둥소리 같은 우렁찬 소리를 낼 수 있단 말이냐?”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너 자신을 영광과 위엄으로 꾸며 보아라. 존귀와 아름다움으로 단장해 보아라. 목에 힘주며 사는 교만한 자들을 노려보고 그들을 향해 네 끓어오르는 분노를 터뜨려 그들을 여지없이 거꾸러뜨려 보아라. 모든 거만한 자들을 살피고 가려내어 그들을 비천하게 낮추고 모든 악한 자들을 그들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짓밟아 보아라. 그래서 그런 자들을 모두 땅에 파묻고 그들의 얼굴을 천으로 싸매어 무덤에 가두어 보아라.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나는 너의 오른손이 너를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고 인정해 줄 것이다.” “거대한 짐승 베헤못을 보아라. 내가 너를 지은 것처럼 그것 또한 내가 지었다. 그것이 소처럼 풀을 뜯어 먹고 있지만 허리에서 솟아 나오는 저 억센 힘을 보아라. 배 근육에서 불끈불끈 뻗쳐 나오는 저 강인한 기운을 보아라. 꼬리는 백향목처럼 곧게 뻗어 있고, 돌처럼 단단한 넓적다리는 힘줄은 서로 굳게 연결되어 있으며, 뼈마디는 놋으로 만든 관만큼이나 강하고, 갈비뼈는 쇠로 만든 빗장과 같다. 그것은 내가 지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도 가장 힘 있는 녀석으로 그것을 지은 내가 그 녀석의 어금니를 칼처럼 날카롭게 만들어 주었느니라. 모든 들짐승이 즐겁게 뛰노는 산, 그 산에서 자라나는 온갖 푸른 풀들이 그것의 먹이다. 그것은 또 연꽃잎 아래에 몸을 눕히고 늪지대의 갈대숲 사이에 몸을 숨긴다. 그러면 연꽃잎은 그것에게 그늘을 드리워 숨겨 주고, 냇가의 버드나무들이 그것을 둘러싸느니라. 강물이 넘쳐흘러도 그것은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으며 요단 강의 물이 불어 입까지 차올라도 녀석은 끄떡하지 않고 아주 태연하도다. 그러므로 누가 감히 그것을 사로잡아 녀석의 코에다 갈고리를 꿸 수가 있겠느냐?” “네가 낚시로 저 리워야단을 낚아 올릴 수 있느냐? 끈으로 그 혀를 묶을 수 있느냐? 네가 녀석의 코를 줄로 꿸 수 있겠으며 그 아가리를 갈고리로 꿸 수 있겠느냐? 녀석이 네게 살려 달라고 빌 것 같으냐? 네게 부드러운 말씨로 속삭일 것 같으냐? 살려 주기만 한다면 녀석이 너와 언약을 맺고 평생 너의 종으로 살 것 같으냐? 네가 애완용 새처럼 녀석을 데리고 놀 수 있을 것 같으냐? 녀석을 끈으로 묶어놓고 네 여종들의 노리개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어부들이 녀석을 잡아다가 값을 흥정하고, 그것을 토막 내어 상인들에게 팔 수 있겠느냐? 네가 녀석의 등짝을 창살로 꿰뚫을 수 있겠으며 녀석의 머리를 작살로 찌를 수 있겠느냐? 네가 손바닥으로 녀석을 한 번 만져만 보아도 다시는 그것에 손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녀석과 싸울 생각일랑은 싹 달아나게 될 것이다. 녀석을 쳐다보는 사람마다 기가 질려 가슴이 쿵 내려앉고 그만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 것이다. 어느 누가 녀석을 감히 건드려 격동시킬 만큼 용맹할 수 있으랴! 그러할진대 하물며 누가 감히 나와 맞설 수 있단 말이냐? 어느 누가 내게 먼저 무엇을 주었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도로 갚으라고 대드느냐? 보아라.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전부 내 것이니라.” “리워야단의 다리에 관한 이야기를 어찌 말하지 않고 지나칠 수 있으랴! 녀석의 그 무지막지한 힘과 거대하고 늠름한 체구에 관해 어찌 침묵할 수 있으랴! 누가 감히 녀석의 가죽을 벗길 수 있겠느냐? 누가 감히 갑옷 같은 두 겹 비늘 사이를 꿰뚫을 수 있겠느냐? 누가 감히 녀석의 아가리를 벌릴 수 있겠느냐? 무시무시한 이빨들로 빙 둘러 돋아 있는 그 소름끼치는 아가리를 누군들 벌릴 수 있겠느냐? 녀석이 자랑하는 등에는 방패 같은 비늘들이 돌같이 단단하게 촘촘히 박혀 있고, 그 하나하나의 비늘들이 빽빽하게 이어져 있어 심지어 바람조차 들어갈 틈새도 없다. 게다가 그 비늘들은 서로 단단하게 꽉 달라붙어 있어서 아무도 그것을 떼어놓을 수 없느니라.” “녀석이 재채기를 한 번 하면 섬광이 번쩍이고, 그 눈초리는 새벽빛같이 빛난다. 녀석의 입에서는 횃불이 뿜어져 나오고, 불꽃이 마구 튄다. 녀석의 콧구멍에서 펑펑 쏟아져 나오는 연기는 펄펄 끓는 가마솥 밑에서 갈대를 지필 때 타오르는 연기와도 같다. 씩씩거리는 녀석의 저 뜨거운 숨결은 가히 숯불을 피울 만하고, 입에서는 활활 불꽃을 토해 낸다. 또 녀석의 목덜미는 어찌나 억센지 그것을 보는 사람마다 겁에 질려 놀라 자빠진다. 게다가 녀석의 살가죽은 겹겹으로 단단하게 붙어 있어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며 녀석의 심장은 바위처럼 강하고 담대하여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는데, 그 강함이 마치 맷돌의 아래짝과 같으니라.” “녀석이 한번 떨치고 일어나면 아무리 힘센 용사라도 무서워 떨고, 몸을 한 번 뒤틀면 모두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선다. 칼로 찔러도 끄떡없고, 창이나 화살이나 작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녀석에겐 무쇠도 지푸라기와 같고, 놋은 썩은 나무토막과 같다. 화살을 마구 쏘아대도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물맷돌을 던져보아도 녀석에게는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다. 몽둥이도 지푸라기쯤으로 여기고, 창을 던져도 코웃음만 칠뿐이다. 녀석의 뱃가죽은 날카로운 질그릇 조각과 같아서 녀석이 지나가면 타작 기계처럼 진흙 바닥에 선명한 자국을 남긴다. 깊은 물도 가마솥의 물 끓듯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하고, 바다도 제 마음대로 휘저어 기름 솥이 끓듯 부글부글 거품을 일으킨다. 또 녀석이 재빨리 돌진하면 지나간 자취마다 하얀 거품이 일어 번쩍번쩍 광채를 발하니 깊은 바다가 마치 하얗게 백발을 휘날리는 듯하다. 세상에 그 무엇이 녀석과 비길 수 있으랴? 처음부터 녀석은 세상에 아무 두려울 것 없이 지음 받았느니라. 그렇다. 이 괴물 같은 녀석은 아무리 거만한 동물이라도 우습게 얕잡아 보고, 모든 교만한 동물들 앞에서 왕 노릇을 한다.” 주께서 말씀을 마치시자 욥이 주께 대답하였다. “주여, 이제 저는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주께서는 못 하시는 일이 없이 모든 일을 다 하실 수 있고, 또 주께서 계획하신 일들은 어김없이 다 이루어집니다. 주께서는 물으시길 “알지도 못하면서 내 뜻을 흐리는 자가 누구냐?” 하셨습니다. 바로 제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입을 놀렸습니다. 너무나 경이롭고 기이해서 저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떠들어댔습니다. 주께서 제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말하겠으니 너는 들어라. 내가 너에게 물을 테니 너는 내게 대답해 보라.”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귀로만 주님께 대하여 들어 왔지만, 이제는 제 눈으로 직접 주님을 뵙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태 제가 말한 모든 말들을 심히 부끄럽게 여기며 스스로를 경멸하면서 티끌과 잿더미 가운데 앉아 회개합니다.”

욥이 아무리 지혜로워도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질문 앞에서는 누구나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광활하고 정교한 이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을 작디작은 인간이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욥은 자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함부로 입을 놀렸던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스스로를 경멸하며 회개했다.

 

나는 고난을 많이 겪었다고 생각한다. 내 또래들에 비하면 나만큼 힘들게 산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그래도 욥에 비하면 큰 고난이 아니다. 그냥 선하신 주님의 뜻과 계획이 있을 것을 믿고 나아가면 되는데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갈팡질팡하며 시간을 허비한 것 같다. 논리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어느 길에 있는지 옳게 분별하며 나아가기를 원한다. 그 길의 끝에 나를 향한 선하신 주님의 아름다운 계획이 있을 것을 믿고 나아가기를 원한다. 세상의 기준에서는 내가 갈 길에 고난이 있을 것이지만, 내가 가는 길이 세상의 행복은 덜할지라도 주님께서 보시기에 옳은 길이라고 확신하기에 이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기를 원한다.